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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버킨 내한공연/세르쥬 갱스부르/샤를로뜨 갱스부르] 프렌치 시크의 아이콘, 제인버킨

언젠가 소개된 적 있었던 카를라 브루니와 사를로뜨 갱스부르(관련 컨텐츠 URL: http://www.louisien.com/42
http://www.louisien.com/55)는 현재의 프렌치 시크를 대표하는 아이콘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있기 전 프렌치 시크의 아이콘으로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색깔을 지닌 제인버킨이 존재했습니다.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엄마이자 버킨백의 뮤즈로 유명한 그녀, 제인버킨. 경계도 틀도 없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며 삶을 살아내는 그녀의 자유로운 삶의 행보를 살짝 들여다보겠습니다.


영국 소녀, 프랑스의 아이콘이 되다

시크한 표정, 자연스러운 스타일, 큰 키에 마른 몸 어디 하나 빠지는데 없이 완벽한 프렌치 시크를 보여주는 그녀가 사실은 프랑스가 아닌 영국 출신이라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입니다. 그녀는 영국 해군장교인 아버지와 영국의 유명배우 주디 캠벨 사이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가수로 데뷔했는데요. 1967년 칸느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Blow Up(욕망)>에 출연, 배우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프랑스에서 데뷔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어도 모르는 상태에서 프랑스 영화 <슬로건>에 캐스팅되면서 첫 프랑스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이 시작을 기점으로 그녀는 프렌치 시크를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우연과 필연이 엉킨 운명 같은 사랑, 세르쥬 갱스부르

그녀가 프렌치 시크의 아이콘으로 확실히 자리매김 한데는 세르쥬 갱스부르와의 만남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세르쥬 갱스부르는 오늘날까지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영감을 제공하고 있는 프랑스 최고의 아티스트죠. 둘의 만남은 제인버킨은 존 베리의 아내인 상태에서, 세르쥬 갱스부르는 브리짓 바르도와 연인관계인 상황에서 이루어졌지만, 첫 만남부터 자신들의 소울메이트라는 것을 확신하고 각자의 관계를 곧바로 청산한 뒤 결혼에 골인 하게 됩니다. 
이후 이 둘은 서로의 뮤즈가 되어 함께 영화를 찍고 음반 작업을 이어나가면서 사랑은 물론 커리어적인 면에서도 한 층 더 확장된 세계를 보여줍니다. 69년 함께 부른 ‘JeT’ame……Moi Non Plus’를 대표로 지극히 퇴폐적이면서 몽환적인 색깔로 그들만의 확장된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곡은 영국에서 차트 1위를 차지한 유일한 샹송임에도 불구하고 선정성이 짙어 여러 나라들에서 금지곡이 되기도 했죠. 숱한 노골적인 비난의 시선 속에서도 이 곡은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1980년도에 갱스부르의 극심한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둘은 이혼을 하게 되지만 그 후에도 둘은 서로의 뮤즈로 남아 서로를 향한 존경의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이 둘 사이에 남은 건 서로를 향한 존경의 노래뿐만이 아닙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샤를로뜨 갱스부르는 현재의 프렌치 시크 아이콘으로 확실히 자리매김 하며 제인버킨과 세르쥬 갱스부르의 피를 고스란히 이어받았음을 증명하고 있죠. 


Birkin Bag, 그 전설의 주인공

1984년 제인버킨과 에르메스 회장 장루이뒤마는 런던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됩니다. 이 때 제인버킨의 물건들로 뒤엉켜 엉망이 된 가방도 함께 장루이뒤마와 마주하게 되는데요. 가방에 주머니가 없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는 불평을 들은 장루이뒤마는 제인버킨에게 그녀만을 위한 가방을 만들겠노라 약속했고, 켈리백보다는 크고 여행가방 보다는 작은 사이즈를 원한다는 그녀의 의견을 반영, 제인버킨의 이름을 딴 지금의 에르메스 버킨백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에르메스 버킨백은 1200만원을 호가하는 초고가의 명품백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사고싶어도 구매할 수 없는 명품 그 이상의 백인데요. 국내의 대기자만 해도 100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베컴을 비롯 버킨백만 컬러별로 수집하는 마니아를 형성시키고 ‘권력을 상징하는 백’으로 지칭되기도 하는 에르메스 버킨백. 하지만 정작 버킨백의 주인공인 제인버킨은 “자신만의 퍼스널리티를 나타내는 바로 당신의 백을 만드세요!”라고 외치며 일본의 버라이어티 쇼 <비스트로 스맙>에서 버킨 백을 땅바닥에 내동댕이 치고 마구 밟는 쇼(?)를 펼쳤죠. 많은 이들이 차라리 나를 밟으라며 아우성 쳤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스타일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그녀야 말로 진정 명품임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두 번째 내한공연 ‘제인버킨과 세르쥬 갱스부르’

2012년 3월 22일 제인버킨이 내한공연을 펼칩니다. ‘제인버킨과 세르쥬 갱스부르’라는 타이틀로 8년 만에 돌아온 그녀는 일본 최고의 음악인들로 구성된 투어 밴드와 함께 그녀의 전성기 시절의 프렌치 팝의 분위기는 물론 복고적인 재즈 밴드의 느낌을 재현할 예정입니다. 더불어 이미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 등과 영화 호흡을 맞춘 적이 있는 홍상수 영화감독과의 만남이 예정 되어 있어, 제인버킨과의 합작이 성사될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고 그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제인버킨.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한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그녀는 단순한 뮤지션이나 배우 혹은 명품 백을 창시했다는 사실보다 자신의 삶의 방식과 선택들에 당당했기에 지금의 그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누군가를 따라가려는 그림자가 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 제인버킨을 루이까또즈에서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