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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people

루이까또즈가 만난 이달의 문화인, 발레리나 박세은

"루이 14세, 베르사유 궁전처럼 서양예술사 시간에 배운 과거의 낭만과 현재가 공존하는 예술의 도시! 오디션을 본 파리오페라발레단 극장을 보고 반해버렸어요." 세계 최정상의 파리오페라발레단 입단에 대해 묻자, 대뜸 파리 예찬부터 펼쳤다. 박세은은 지난 7월 4일, 111명의 여자 무용수 오디션 경쟁자 가운데 3등을 차지하며 국내 발레리나 최초로 파리오페라발레단 입단 자격을 얻었다. 1등에게만 입단 자격이 주어지지만, 그녀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못내 아쉬웠던 발레단 측에서 이례적인 제의를 해온 것. 180명의 단원 중 외국인은 단 5% 이내로 규제할 정도로 배타적인 이곳에 9월 중 입단하면, 발레단에서는 그녀가 유일한 동양인이라고. 하지만 박세은의 파리오페라발레단 합격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2006년 미국 잭슨 콩쿠르 금상 없는 은상, 2007년 스위스 로잔 콩쿠르 1위, 그리고 지난해 불가리아 바르나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거머쥐며 세계 4대 발레 콩쿠르 중 세 봉우리를 정복했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그랑 쉬제로 입단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미래를 보장받은 안정된 솔리스트의 길을 마다하고 험난한 도전의 길을 걷기로 한 것. 굳이 춤사위를 보지 않아도, 고운 치열을 드러내며 수줍게 짓는 미소만으로도 곱디고운 이 22세의 발레리나는 사실 주어진 삶을 거부하고 중요한 순간 언제나 높은 곳을 향해 도전하며 주변 사람들을 의아하게 했다. 1년여 동안의 아메리칸 발레시어터에서의 생활을 접고 국립발레단에 입단했을 때, 또다시 돌연 학교로 돌아왔을 때,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아홉 살 때 <호두까기 인형>을 본 후 보석 박힌 예쁜 의상을 입고 싶단 생각에 시작한 발레가 어느 순간 그녀의 전부가 되었다. 발레를 위한 천부적인 신체 조건을 타고난 것은 아니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컨디션을 챙기며 빠른 시간에 높은 성과를 올릴 수 있는 '똑똑한 발레'를 해온 덕에 아직 큰 부상 한 번 없었다. "35세까지 계획을 치밀하게 짜놓았어요. 파리오페라발레단에 합격하는 순간 다 이뤘다 싶었는데,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니 이제 다시 시작이더라고요." 그녀의 블로그를 보면 '세상에는 내가 몰랐던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발레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완벽한 몸으로 아름다운 선을, 그리고 노력으로 만들어진 그 무한의 감동을 표현해 나를 무아지경에 빠뜨리곤 한다'며 넥스트 스테이지에 대한 무한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발레리나 외의 다른 길은 생각조차 해본 적 없지만, 발레 때문에 일상을 포기하는 것은 더더욱 싫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맛집을 찾아다니고, 영화도 보고, 남자친구도 만나는 등, 그 나잇대에 누려야 할 삶을 온전히 누리면서 자연스레 녹아든 경험을 발현해 무대 위에서 특별한 울림을 주고 싶단다. 무한한 가능성, 타고난 재능, 불타는 열정으로 가득한 발레리나 박세은이 파리 무대에서 높이 날아오르길 기대해본다.

출처 : Heren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