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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양식/베르사유궁전/쇤부른 궁전] 궁정문화의 중심지, 베르사유 궁전vs쇤부른 궁전

17~18세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 꽃피었던 궁정문화는 현재까지도 녹슬지 않은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당시 왕가의 인물들은 식기도구부터 패션까지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영위했는데요. 그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궁정문화의 중심이 되었던 궁전입니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

루이 14세의 궁전으로도 불리는 ‘베르사유 궁전’은 익히 알려진 대로 놀라운 규모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파리 주변의 작은 시골마을에 불과 했던 베르사유는 이 궁전으로 인해 자치권을 지닌 하나의 도시로 성장하게 되는데요. 루이 14세의 명령아래 1661년부터 무려 30년의 건축기간을 거치며, 사냥용 별장에서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건축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베르사유 궁전이 탄생하게 된 일화 역시 흥미롭습니다. 1661년 프랑스의 재정총독대신 푸케는 루이14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새로 지은 궁전으로 그를 초대하는데요. 푸케는 6천 명의 손님들 모두에게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식기를 사용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연회를 준비합니다. 이에 루이14세는 대신의 궁전이 왕인 자신의 궁전보다 더 화려한 것에 몹시 화가 나는데요. 얼마 후 루이14세는 푸케가 부정한 행위를 저질렀다며 그를 체포하였고, 그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은 물론 그의 화려한 궁전마저 불태워버렸습니다.
이후 루이 14세는 자신을 위한 궁전을 짓기로 결심, 그 누구의 궁전보다 화려하고 멋진 궁전을 만들기 위해 대신의 궁전을 지었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들였는데요.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베르사이유 궁전입니다.
절대왕정의 상징이던 베르사유 궁전은 왕과 귀족에겐 완벽한 공간이었으나, 가난한 프랑스 국민들에게는 원망의 대상이였습니다. 18세기 프랑스는 대외정책의 실패와 궁정 생활의 낭비로 인해 극심한 재정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이후 발생한 프랑스 혁명 때 분노한 국민들에 의해 궁이 붕괴 위험에 처하자, 당시 왕이였던 루이 16세는 “궁전만은 건드리지 말아달라”며 애원했다고 합니다.

현재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베르사유 궁전은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유럽 최고의 문화재로 손꼽히는데요. 이 곳을 찾는 이들을 위해 분수쇼나 음악의 정원과 같은 즐거운 이벤트를 마련해 선보이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쇤부른 궁전’

루이 14세가 집권하던 시절,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는 프랑스를 넘어 유럽전체를 아우르며 세력을 넓혀 나갔는데요. 당시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와 쌍벽을 이루던 곳이 바로 합스부르크(현재의 오스트리아) 왕가였습니다. 유럽 최대의 왕조로 불렸던 합스부르크왕가는 당시 프랑스와 여러 면에서 경쟁구도를 띄고 있었는데요. 아름다운 베르사유 궁전에 자극 받은 합스부르크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는 이에 버금가는 궁전을 만들도록 지시했습니다.

[사진 출처: http://bit.ly/T0DEuE]

‘아름다운 샘물’이란 뜻의 ‘쇤부른’은 왕실의 식수를 제공해 주던 천연샘물이 있던 자리에 궁이 세워지며 붙은 이름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쇤부른 궁전은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이자 루이16세의 왕비인 마리 앙뜨와네뜨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곳이기도 한데요. 6세의 모차르트가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곳으로 유명한 ‘거울의 방’을 비롯해, 총 1441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쇤부른 중에는 궁전 이외에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정원과 함께 1752년 세워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을 비롯, 화원 등이 자리잡고 있는데요. 세계 2차대전 당시 궁이 일부 훼손되기도 하였으나 이 후 복구 되어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닮은 듯 다른 두 궁전

[쇤부른 궁전의 ‘Vieux-Laque’ Room]

베르사이유 궁정과 쇤부른 궁전은 라이벌 관계에 있는 두 왕가의 자존심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자리잡게 되었는데요. 두 궁전은 비슷한 양식과 형태를 띠고 있지만 다양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 궁전의 내부와는 달리 정원의 모습은 사뭇 다른 풍경을 자아내는데요. 우선 수자원이 풍부했던 베르사유 정원에는 거대한 호수와 화려한 분수들이 자리잡고 있는 한편, 쇤부른의 정원은 ‘축제의 기능’에 중점을 살린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베르사유 궁전은 정원을 내려다 보는 형식에 반해, 쇤부른 궁전은 정원을 올려다 보는 형태를 띠는데요. 쇤부른의 정원은 베르사유를 모델로 삼았지만 궁전의 앞뒤로 정원이 잘 발달된 특색을 지녔습니다.

문화재의 가치는 수치로 따질 수 없듯이 두 궁전의 아름다움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 일텐데요. 오랫동안 하나의 왕가를 대표해왔듯이 현대인들에게 많은 미적 가치를 전해주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