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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술/리큐르/프랑스 술문화] 치명적 유혹을 전하는 예술가의 술, 압생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가 중엔 유독 술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취화선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조선시대 화가 장승업, <죽음의 병>을 집필할 당시 하루6리터의 포도주를 마셨다고 전해지는 마르그리트 뒤라스, 술을 마신 다음날이면 새벽 6시에 일어나 작품활동에 매진했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 등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예술가들이 술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는데요. 때론 술의 기운을 받아 예술혼에 날개를 달기도 했고, 때론 그들의 천재성을 술과 함께 모두 마셔 태워버리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의 예술가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에선 유독 당 시대의 유명 예술가들의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요. 이중 특히 프랑스의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술이 있으니 바로 매혹적인 초록빛의 술, 압생트입니다.

압생트의 특징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많이 마셨던 압생트는 불어로 ‘고통, 고난, 쓴맛의 쑥’을 뜻합니다. 쑥의 라틴명 ‘압신티움’에서 유래된 압생트는 향 쑥, 살구씨, 회향, 아니스 등을 주된 향료로 만든 술인데요. 제조방법이 쉽고 가격이 저렴하며, 알코올 함량이 높아 빨리 취할 수 있어 서민들의 술이라 불렸습니다.


마시는 방법 또한 독특했습니다. 유리잔에 압생트를 1/3쯤 채운 후 술병입구에 구멍이 뚫린 숟가락을 올려놓고, 그 위에 다시 각설탕을 올린 후, 차가운 물을 각설탕에 한 방울씩 떨어 뜨려 설탕이 술에 스며들게 한 후 마셨다고 하는데요. 설탕을 넣으면 초록색이었던 압생트는 하얗게 변하고, 설탕의 달콤함이 녹아 들어 술의 쌉쌀한 맛과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고 합니다.

압생트를 사랑한 예술가

[Viktor Oliva, The absinthe drinker, 1901]

예술혼을 불태워주는 기폭제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창작의 고통과 외로운 고독을 달려주는 친구이기도 했던 압생트에 대한 예술가들의 사랑은 남달랐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세상의 어느 것도 한 잔의 압생트보다 시적인 것은 없다”고 말했으며, 시인 랭보는 압생트를 가르켜 “가장 우아한 하늘하늘한 옷”이라 칭했는데요. 독특한 녹색병 때문에 별명도 많아 ‘녹색요정’, ‘에메랄드 지옥’ 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Edgar de Gas, Absinthe, 1876(좌) / Vincent Van Gogh, Café Table with Absinthe, 1887(우)]

압생트는 특히 술을 마셨을 때 야기되는 환각증상이 예술적 감성을 자극시킨다 하여 많은 화가, 소설가, 시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았는데요. 마치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압생트는 많은 예술작품의 주요 소재로 등장했습니다.

[Vincent van Gogh, Arles: April, 1889]

반 고흐가 죽기 직전 프랑스 아를에 머물며 그렸던 그림에는 기묘한 느낌의 컬러들이 사용된 것으로 유명한데요. 이는 압생트에 시신경을 손상시키는 테르펜(terpene)유도체가 함유되어 고흐의 시각장애를 유발시켰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또한 압생트에는 중추신경에 심각한 장애를 동반해 지각장애와 정신착란, 간질과 유사한 발작을 일으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성분인 투존(Thujone) 역시 함유되어 있었다고 하는데요. 때문에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것도,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은 이유도 바로 이 술에 취해서였다는 가설도 존재합니다.


압생트에 취한 사람의 수가 늘어가자 20세기 들어 유럽에서는 압생트를 법으로 금지시키기도 했습니다. 그 중 한 이유는 과거 압생트 판매가 와인을 능가하자, 프랑스 와인 제조업자들이 압생트가 치명적 중독성 있다고 알려지도록 로비를 했다는 소문도 있는데요. 하지만 근래의 연구결과에서 투존이 환각증세의 원인이 아니라는 이론이 등장하며 판매가 재개되었으며, 포스터 광고나 케이스 디자인에 환각상태의 고흐의 모습 등을 사용하며 판매 효과를 높이고 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 독한 술에 의지 했던 진짜 이유는 우여곡절 많은 삶의 빈 공간을 물질적인 힘으로나마 채워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무엇을 향한 욕망보다는 단순한 즐거움의 하나로 받아드릴 때, 이 초록빛 술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