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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전시회/프랑스 패션 전시회] 패션 인형에서 시대의 아이콘으로 - ‘모델 : 패션의 몸’


19세기 말 드레스를 만들던 장인들이 자신의 고객인 귀족들에게 효과적으로 자신의 의상을 선보이기 위해 시작된 ‘모델링’은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변화를 통해 단순히 옷을 보여주는 수단을 뛰어넘어 그 자체로서 아이콘으로 자리 잡으며 진화되어 왔습니다. ‘모델링’을 빼놓고서는 패션을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패션의 세계에서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은 시대가 왔으니 이 시점에 ‘모델- 패션의 몸’이라는 제목으로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가 주목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듯 보입니다.

패션의 역사 속 모델, 혹은 마네킹


파리 센강에 자리하고 있는 패션&디자인 센터 Cité de la Mode et du Design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헤밀트 뉴턴, 기 부르덩, 어윈 블루멘펠트 등 패션 사진작가의 사진 원본 120여 점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보이는 패션 사진의 거장 헬뮤트 뉴튼의 사진작품은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전달해 줍니다.



전시장은 전반적으로 차가움이 느껴지는 그레이와 실버톤의 단정한 디스플레이로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옷장을 연상시키는 철제 구조물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작품들은 모델이 가지는 ‘인간’으로서의 주체성과 ‘오브제’로서의 역할 사이의 불분명한 경계를 이야기하듯 다소 차갑게, 또한 미래적으로 꾸며져 있는데요. 그 외에도 현대와 초기 마네킹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오브제와 비디오 다큐멘터리, 패션쇼 노트와 모델에 관한 메모 등 숨겨져 있던 모델들에 대한 패션 속 실제 양상들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모델의 정체성에 주목하다


흔히 쇼윈도에 설치된 사람 모형을 일컫는 ‘마네킹’이라는 단어는 프랑스어 ‘마니깡 (Mannequin)’에 그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사람 모양의 모형을 ‘마네킹’, 그리고 실제 사람을 ‘모델’이라고 구분하여 부르지만, 프랑스에서는 이 단어에 경계를 두지 않고 두 경우 모두 ‘마니깡’이라 부르는 경우가 흔한데요. 마네킹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말해주듯, 이 전시는 전반적으로 인간성과 오브제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모델의 모호성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어느 부분에 더 가깝냐는 정답을 내세우기보다는 패션사에서 그 역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것은 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관객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줍니다. 



14세기 후반, 왕족이나 귀족들에게 옷을 선보이기 위해 패션 인형 (Fashion Doll)에 옷을 입히던 시절부터 옷을 누구에게 입히느냐가 이슈가 되는 지금까지 인간성과 오브제로서의 모호성에 대한 논의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 포토샵 같은 기술의 발전으로 모델의 ‘인간성’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기계화, 로봇화’된다는 흥미로운 주제는 많은 관람객들의 동감을 얻어내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몸이야 말로 그 어떤 인공물도 따라올 수 없는 ‘미’를 지녔기에 이 시대는 모델을 동경하며 또한 하나의 작품이라 일컫는지 모릅니다. 의상에 생명감을 불어넣고, 관객에게 정확한 디자인을 보여주며, 나아가 간접경험과 상상까지 제시해주는 모델에 더 이상 ‘오브제’와 ‘인간’의 사이에 머무는 존재로서 가치를 두는 것보다 ‘인간의 확장’이란 열린 가치를 부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파리통신원-임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