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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명작 소설/에밀졸라/목로주점] 문학의 사실성을 획득한 소설,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19세기 후반 문단의 대표이자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의 문을 연 소설가 에밀 졸라는 인간의 본성을 면밀하게 끄집어내 적나라한 현실을 여과 없이 작품 속에 표현 했습니다. 그는 진실에 대하여는 절대 겉 넘지 않고 투철한 고발정신을 나타내곤 했는데요. 그로 인해 보수적 성향의 대중에게는 미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에 대한 끈질긴 호소를 포기하지 않았던 에밀 졸라는 모두가 외면했던 진실을 작품으로 승화해내며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사로잡았는데요. 이는 곧 그의 작품 <목로주점>이 에밀 졸라의 대표작이자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읽는 사람은 누구나 좌절하게 되는 소설


<목로주점>을 뜻하는 프랑스어 L’ Assommoir는 도살용 몽둥이, 혹은 불순한 술을 파는 술집과 술집 주인을 의미합니다. 그와 동시에 소설 속에서는 여주인공 제르베르의 밑바닥을 보여주며 도덕적 육체적 타락으로 내몰아 냈음을 함축적으로 말해주는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제 꿈은 정직한 사람들 틈에서 사는 거예요.”


여자주인공 제르베르는 지겨운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꿋꿋하게 삶의 터전을 일궈내려 노력하는,연약한 여성입니다. 그녀의 의지와 뜻과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우환과 시련으로 인해 결국 알코올 중독과 가난, 성적 타락 같은 비관적인 삶의 굴레 속에서 처절하게 죽어가는데요. 억척스럽게 삶을 꾸려나가다가도 번번이 좌절하며, 결국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되는 여주인공 제르베즈의 이야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깊은 좌절을 느끼게 합니다.


주인공 제르베르는 지긋지긋한 현실을 벗어내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오히려 소설을 읽는 독자의 마음에 좌절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의지로서도, 노력으로서도 극복되지 않는 삶의 무게는 부모로부터 대물림 된 현실이며, 세대를 걸쳐 나타나는 프랑스 빈민들의 짙은 그림자를 대변해 줍니다. 에밀 졸라는 한 인물의 인생을 통해서 빈민의 현실과 제도의 실상을 고발합니다.


좌절이 운명인 자들의 가혹한 인생을 조명하다


<목로주점>을 찬찬히 읽다 보면, 주변 환경에 대해 무척 자세하게 묘사됩니다. 그것은 자연주의 작가의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에밀 졸라가 인간 본성에 관한 탐구를 할 때 개인의 환경과 과거 배경에 대해 주안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주변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러한 사회화 과정을 겪으며 인생의 틀이 만들어진다는 관점을 드러내는데요.


같은 관점으로 주인공 제르베즈의 삶을 조명해보면 그것은 결코 그녀 스스로의 자업자득이 아닌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적 영향과 그녀를 둘러싼 많은 남자들로 인한 환경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목로주점> 이후 연작되는 소설 <나나>와 <제르미날>은 제르베즈의 자녀인 나나와 제르미날을 주인공으로 다루는데요. 이를 통해서도 부모와 자녀세대의 삶을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되며 작가가 가지는 관점과 사상은 더욱 명확해집니다.
대물림된 열등한 유전적 성향과 제르베르를 통해 난 후손들까지, 회생이 불가능해 보이는 프랑스 빈민들의 현실은 에밀 졸라의 펜 끝에서 사실적이고 명확하게 표현됩니다. 뿌리 깊이 박힌 모순적 사회적 제도와 구조, 그리고 이것을 개혁해야만 한다는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느끼게 됩니다.



<목로주점>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렸습니다. 작품에 대해 에밀 졸라가 자평하기를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평범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첫 번째 소설이자 진실을 이야기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지만, 몇몇 보수적 비평가들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풍자, 성적 불결함, 부도덕성 등을 언급하며 질타를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에밀 졸라는 <목로주점>이라는 소설로 일약 베스트셀러로 거듭나고 프랑스 19세기를 대표하는 문호로서 입지를 다지게 되는 발판을 마련합니다. 이것은 곧 이 소설을 찾은 많은 프랑스 민중들에게 뼈아픈 현실에 대한 고발적 정신이 통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일 텐데요. 모두가 쉬쉬하는, 하지만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할 문제를 제기한 작가와 작품은 19세기 말의 프랑스 문단에 반드시 등장해야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