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없었던 시절, 여성의 지위는 사회에서 한없이 낮았는데요.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과 풍조 속에서도 성별의 한계를 극복하며 왕실 화가로 활동함은 물론, 전 유럽에 엄청난 예술적 영향력을 펼친 사람이 있습니다. 로코코양식의 대표 화가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 그녀의 이름은 바로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입니다.

동갑내기 여왕을 만나다


엘리자베스 비제는 15세의 어린 나이 때부터 전문 화가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지금으로선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시의 시대 풍조를 본다면 파격적인 면이 없지 않은데요. 당시 여성으로서 미술계에서 할 수 있었던 건 누드모델 정도였을 만큼 여성으로서의 예술계 진출은 열악했습니다. 실제로 그녀가 활동할 당시 비제는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 수많은 스캔들에 시달려야 했을 만큼 편견과의 싸움을 계속해 왔는데요. 그럼에도 불구, 전문 화가로서 입지를 굳히게 된 것은 그녀의 타고난 재능과 자기관리, 그리고 그것을 발견해준 주변의 조력자들 덕분이었습니다.


그녀가 화가로서 성장하고 자리 잡기까지의 조력자로는 아버지와 남편이 있었습니다. 미술 아카데미의 교수였던 아버지는 어린 시절 미술교육을 통해 섬세한 표현력을 지닌 그녀의 가능성을 발굴해주었고, 본격적으로 화가로서의 입지를 넓히는 데에는 미술품 수집가로 이름이 높았던 남편의 영향력이 작용했습니다. 덕분에 전문화가로 활동을 시작하며 많은 수입을 거뒀으나 그 수입은 자신의 소유가 아닌 자신의 남편과 아버지에게 귀속되곤 했습니다. 아버지와 남편의 도움으로 작가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나 지위로나 독립적일 수 없었던 것은 여성이라는 성별적 한계를 가진 엘리자베스 비제의 핸디캡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가치를 발견해주는 최고의 조력자가 등장했으니 그는 바로 엘리자베스 비제의 동갑내기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입니다. 명성이 자자한 궁정화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자 젊은 나이의 엘리자베스 비제를 선택한 것은 섬세하고 예리한 시선, 그리고 내면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감각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동갑내기로서 많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아 왔던 그녀는 여왕을 진심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비제가 그려낸 마리 앙투아네트의 그림 속에는 여왕의 기품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내면, 그리고 여왕 특유의 성품이 묻어나 있는데요. 한때는 그녀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왕의 모습이 권위를 떨어뜨린다며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다른 궁정화가들은 그릴 수 없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인간적인 매력을 비제는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또 다른 시작



프랑스 여왕에게 총애를 받는 그녀였기에 프랑스 혁명의 칼날 역시 그녀 앞을 피할 수는 없었는데요. 처형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엘리자베스 비제를 지키기 위해 남편은 그녀를 이탈리아로 망명시켰고 처형의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망명자라는 슬픈 현실로 프랑스를 떠나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녀에게는 미술적 영향력을 세계에 끼칠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망명 6년 후 파리로 돌아오기까지 그녀는 유럽의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게 됩니다.


그녀의 그림 속에는 폴란드의 왕 스타니슬라스 2세, 나폴리의 캐롤린 여왕를 비롯해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거쳐가게 되는데요. 프랑스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것은 물론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시작으로 그녀의 가치와 진가를 알릴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편의 지지를 받아 활동을 하기는 했으나 수입에 대한 권한이 없었던 그녀는 해외 망명과 자립을 통해서 경제적인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파리로 돌아온 이후에도 미술활동에 전념해 눈을 감게 되는 날까지 600점 이상의 초상화와 200여 점의 풍경화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로코코 양식 특유의 섬세함, 그리고 아름답고 고상한 느낌의 그림은 보기에도 우아한 감성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 역시 로코코 양식의 대표 화가인 만큼 그러한 섬세하고 생기 넘치는 듯한 그림이 인상적인데요. 그녀가 오늘날 우리에게 보다 더 가치있게 여겨지는 이유는 당대에 흔치 않은 여성 화가로서만이 아니라 한 사람을 진실로 이해하여 그림을 통해 묘사하기 때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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