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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다다이즘/프랑스 예술가] 조국에서는 인정 받지 못했던 예술계의 이단아, 마르셀 뒤샹


누군가가 시대를 앞서 보는 넓은 시야를 가지지 않았다면 예술은 물론 문명은 아마 정체되고 퇴색되었을 것입니다. 새로움을 환영하고 발견하며 그것을 구체화 하는 모든 과정은 한 시대에 박수를 받거나 질타를 받는 두가지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그 모습이 어떻든지 선구적인 눈은 시대를 개척하고 흐름을 주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한데요. 오늘 만나볼 프랑스 예술가이자 현대미술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다다이즘의 창시자, 마르셀 뒤샹 역시 시대가 감당치 못했던 창조적이고 선구적인 예술가 중의 하나라 칭할 수 있습니다.

문제적 작가의 오브제, Ready-made



'Ready-made’라는 단어는 직역하는 그대로 기성품을 의미합니다. 즉, 이미 만들어진 하나의 상품을 뜻하지만 이런 레디메이드가 마르셀 뒤샹에게 가면 하나의 오브제로 변화하는데요. 문제적 작가로 불리었던 마르셀 뒤샹의 작품은 전적이고 우아하며 고 품격의 분위기를 선사하는 회화와 조각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있어 난해한 작품이라는 평을 주로 얻습니다. 그는 그저 하나의 기성품일 뿐인데 모든 의미를 뒤집어 엎는 사람이었는데요. 처음 만들어진, 하나의 물건으로서 가지는 목적과 상관 없이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해내는 것은 레디메이드의 핵심 논리이자 마르셀 뒤샹이 시도한 아방가르드한 현대 미술의 초석이 됩니다.


하나의 기성품을 오브제로서 승화시켰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단순히 새로운 오브제를 발견하고 남들과는 다른 것으로서 예술을 한다는 것을 뛰어 넘어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이기도 한데요. 마르셀 뒤샹이 예술가로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시기는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대량생산이 본격화되던 때였기 때문에 그러한 상품이 예술 작품이 된다는 것은 산업화와 함께 새로운 예술 양식이 등장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 마르셀 뒤샹의 작품이 출품되는 곳에서는 늘 예술이냐 아니냐의 논쟁이 들끓었고, 심지어 철거되기 일수였는데요. 돈 주면 누구나 살수 있는 제품, 즉 자기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닌 상품을 서명 하나 달랑 찍어낸 채 출품한다는 것은 창조성을 중요시하는 기성 예술에 대한 도전적인 모습으로 비춰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봤을 때 뒤샹은 기존의 전통 예술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 기성 예술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구체적인 작업이 중시되곤 했는데요. 뒤샹은 그에 반하여 하나의 작품에 얼마만큼 기발한 상상력과 아이디어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기발한 상상력과 명확한 예술적 신념은 이후 팝아트를 비롯하여 초현실주의, 개념미술, 아티스트 백남준에 몸 담궈 온 예술사조인 플럭서스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위대한 침묵



여느 예술가라면 예술에 대한 열정과 혼을 쏟아 부으며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을 나이인 37세에 마르셀 뒤샹은 돌연 예술가로서의 표면적 삶을 중단하기에 이릅니다. 또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닌 그저 어릴 적부터 즐겼던 체스를 두면서 미국과 유럽 여러 도시를 다니며 삶을 살아가는데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작품을 공개, 혹은 발표하는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일생 동안 꾸준한 예술적 활동을 이뤄갔습니다. 하지만 그 것을 누구에게도 평가를 받으려 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길을 걸어가는데요. 이에대해 마르셀 뒤샹이 돌연 공식적인 예술가로서의 활동을 중단했던 이유는 무엇일지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마르셀 뒤샹을 침묵과 공백의 기간으로 몰아낸 결정적인 원인은 기존의 통념을 깨지 못한 정체된 예술계의 분위기가 아닐까 하는데요. 전시회에 선보이게 된 작품들은 대부분 철거하는 것이 일수였고 틀이라는 것을 정하는 예술계에 대한 회의적 입장이 그의 작품을 세상 밖으로 등장시키지 못하고 체스나 하러 다니는 방랑 예술가로 전락시킨 것이라 추측할 뿐인데요. 예술가로서의 입장과 목소리가 외면당하다 보니 의욕은 물론 함께 예술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던 그의 마지막 고집은 곧 오랜 침묵의 시기와 연계되지만, 하지만 후에 이것은 오히려 마르셀 뒤샹이 자신만의 독보적인 길을 구축하는 것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대중에게 큰 인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뒤샹만의 신념과 고집은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동시에 상징과 의미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두었고 실험적인 정신으로 인해 예술적 세계를 완성하게 되는데요. 어릴 적부터 체스를 잘 두었고 침묵의 기간 내내 체스선수 못지 않은 실력을 갖춘 그는 체스 비평가로서 분하기도 하며 다양한 모습을 꾀하지만 그의 아방가르드한 예술적 가능성은 후대에 속속 밝혀지며 사후에야 주목을 받게 됩니다.


뒤샹의 예술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아주 쉽고 간편하며 친숙한 것에서 비롯됩니다. 다른 것에서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에 밀접한 그곳에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고 하나의 오브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 만으로도 그의 삶은 온통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가득했음을 보여줍니다. 사각형의 캔버스 대신, 소변기나 자전거 바퀴로 고정관념을 깨뜨리려 했던 그의 신념은 오늘 날 예술의 자유로움을 더욱 확대시켰고 덕분에 후대 예술가들은 좀더 자유로운 상상을 하게 되는 밑거름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