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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교향곡/프랑스 작곡가/낭만주의] 관현악의 혁명가, 엑토르 베를리오즈

영화 <어거스트 러쉬>는 특별하게 음악에 대해서 배워본 적이 없는 주인공이 거리에서 훌륭한 음악 실력을 뽐내며 천재성을 확인하는  스토리라는 것을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계실 텐데요. 특별한 교육에 의해서 길러지는 실력이 아닌 본인이 즐거워 하고 본능에 따라 움직였을 때 발견되는 재능은 그 천재성을 확인시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프랑스 작곡가이자 후기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작곡가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관현악 계의 혁명가라고 불리울 만큼 놀라운 천재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생각한 대로, 꿈꾸는 대로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프랑스가 낳은 최고의 오케스트라 귀재이자 형식과 틀에 구애받지 않는 획기적인 형식을 취하여 “혁명가”라는 별칭이 붙곤 합니다. 다른 음악가들이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음악을 접하며 음악에 대한 특별한 교육을 받는다면,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경우는 일반적인 음악가들과는 다르게 음악이나 클래식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 시절 어느 집안이나 그러하듯 아버지의 직업은 곧 자식의 직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베를리오즈의 아버지는 의사였기 때문에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바랬고 그는 아버지의 뜻을 받아 의과대학을 다니기 위해 파리로 오게 됩니다. 피아노 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베를리오즈는 플룻과 기타를 익히고 작곡을 독학으로 배우며 예술에 대한 즐거움을 알아가던 그는, 의학 공부를 하기 위해 도착한 파리에서 예술에 대한 열망을 이기지 못하고 부모의 극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게 됩니다.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공부하게 된 것은 베를리오즈가 파리에 도착한 이후 비로소 시작되게 된 것입니다.


이후 셰익스피어의 연극과 베토벤의 음악에 심취된 그는 베토벤을 능가하는, 그가 보여줬던 새로움을 뛰어넘는 참신한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만약 베를리오즈가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음악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면 상상의 자유를 작품을 통해 나타낼 수 있었을까요? 어떠한 형식도 틀도 머릿속에 정해져 있지 않았던 베를리오즈는 상상으로나 할 법한 음색을 관현악을 통해 마음껏 해석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누구도 상상만 했을 뿐 펼쳐보지 못한 음악을 시도하고 나타내는 음악가라는 의미에서 “혁명가”입니다.

고정관념이 없이 음악에 대한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가진 그는 자신의 머릿속 악상을 실현하기 위해 방식과 구성을 완벽하게 뒤엎곤 했습니다. 한 악기 안에서 다양한 화음을 쌓기 위해 오케스트라에 정해진 인원 수를 배로 늘리기도 하고, 악기가 가진 특성을 있는 대로 끄집어내 악보에 싣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열정과 상상력은 때로 많은 사람들에게 무리라는 원성을 듣기도 했지만 대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화려하고 폭넓은 음색과 교향곡을 완성해 입체적인 음향을 완성했습니다. 규모적인 거대함과 악기에 따른 연주 방식의 세세함을 조화시켜 그의 작품은 감성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현재까지 추상적 풍경이나 사물을 묘사하는 표제 음악(programme music)의 아버지로 추앙되고 있습니다.

가장 낭만주의적인 작곡가



서정적인 선율과 함께 감정적 분위기를 구사하며 자유롭고 개성있는 음악 사조인 낭만주의. 주관적 감정 표현과 기교적인 선율, 기존 악식을 뛰어넘는 구성이 특징적인 성격으로 비춰 볼때 베를리오즈는 가장 낭만주의적인 작곡가일 것입니다. 그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작품은 역시 지금까지도 베를리오즈를 대표하는 작품인 “환상교향곡”을 꼽을 수 있습니다.



20대 중반, 셰익스피어에 심취되어 있던 베를리오즈는 그날도 어김없이 영국 셰익스피어 극단의 공연을 보러 극장을 찾았습니다. 그날의 작품은 “햄릿”이었고, 극중 인물인 ‘오펠리어’를 연기하는 여배우 해리엇 스미드슨에게 한눈에 반한 후 그는 사랑의 열병을 앓기 시작합니다. 수없이 대시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던 그는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르는데요. 자살을 기도하던 날 밤, 마약을 대량 복용하고 꿈에서 본 환상을 토대로 작곡한 작품이 바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환상 교향곡”입니다. 사랑하는 여자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분노와 애증, 극단적인 상황을 담아 놓은 이 작품은 자신이 본 환상을 몽환적이면서도 기품을 느끼게 하는 음악으로 완성해냅니다.

결과적으로 환상 교향곡을 통해 베를리오즈는 당시 영국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여배우 해리엇 스미드슨과 결과적으로 혼인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관현악법의 다양성을 망라하여 낭만주의 음악적 성격을 확고히 했다는 점에서 극찬을 받았습니다. 아쉬운 점은 아름다운 여배우와 정열적인 음악가의 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오케스트라를 마치 하나의 악기처럼 자유자재로 조율하고 자기 스타일에 맞춰가며 개성있는 음악세계를 완성한 엑토르 베를리오즈. 단순히 음악적 재능을 통해 쌓은 업적 이외에도 그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음악을 일찍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넓고 다양한 상상력을 가졌고, 편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정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했다는 것. 이 모든 것은 베를리오즈를 낭만주의 대표 음악가이자 우리가 그를 하나의 혁명가로 기억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