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잡지, TV와 영화, 그리고 인터넷과 스마트폰까지. 우리는 매일 매체의 홍수 속에서 범람하는 이미지들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눈을 번쩍 뜨이게 할만한, 가슴을 쿵 하고 울릴만한 결정적인 풍경과 마주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익숙한 세상의 모습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프랑스의 개념 미술가 소피 칼, 그리고 파리의 가장 아름답고 즐거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긴 프랑스 사진계의 거장 로베르 두아노 작품의 공통점은,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 특별한 순간을 포착해 기록했다는 점인데요. 단순한 삶의 풍경 속 아름다운 필름을 한 겹 겹쳐 씌운 그들의 특별한 작품세계를 만나보겠습니다.


낯설게 그려낸 세상을 기록하다, 소피 칼



소피 칼을 소개하는 수식어는 다양합니다. 사진작가, 설치 미술가, 그리고 개념미술가까지.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만큼, 소피 칼의 작품들은 주제와 방식에 있어 그 경계가 없이 자유롭습니다. 1954년 파리에서 출생한 소피 칼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결합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작업하는 아티스트입니다. 17세가 되던 해 7년간의 해외여행과 함께 독특한 예술작업을 시작하는데요. ‘최고의 거짓말쟁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소피 칼의 작품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것이 특징입니다. 현실인지 허구인지, 혹은 자신의 이야기인지 타인의 이야기인지 관객들로 하여금 보고 있는 것에 대한 불확실성을 던져 줌으로써 작품에 대한 흥미와 몰입을 이끌어냅니다.



그 모호하고 불확실한 작품세계는 일상의 풍경을 낯설게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사립탐정을 고용해 자신의 모습을 쫓게 함으로써 낯선 사람에 의해 관찰되는 나의 모습을 셀프 포트레이트로 제작하기도 하고, 베니스 여행 중 호텔 청소원으로 취직하여 여행객이 호텔방에 남긴 흔적을 추적해 개인의 특이성을 찾아내는 <베니스의 추적>이라는 흥미로운 작품을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80년, 익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침대에서 자는 모습이 녹화된 비디오 <잠자는 사람들>을 11회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해 유명세에 오르게 됩니다. 맹인들이 느끼는 미와 단색의 그림에 대한 생각을 글과 사진으로 남긴 작품, 또 뉴욕의 공중전화부스를 점거하여 행인, 노숙자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작품 역시 대표적인 그녀의 작품인데요.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소피 칼은 26세부터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해 1970년대부터 퍼포먼스, 사진, 비디오 등을 결합한 작업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종종 허구일 수도 있는 스토리를 작품화하거나 개인의 일상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보여주었는데요. 2004년 프랑스 퐁피두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고, 2007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프랑스관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되기까지 했습니다. 폴 오스터가 소피칼과 가상의 인물을 혼합한 소설 <거대한 괴물>을 쓰자,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사는 자신을 찍어 작품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요.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개인의 일상을 작품 자체로 만드는 진기한 능력을 가진 아티스트. 함께 놀이를 즐기자며 손짓하는 듯한 소피칼의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한 세계는, 늘 사람들로 하여금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정지된 풍경 속 가장 아름다운 파리, 로베르 두아노



어떤 곳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도 아름다운 풍경이 고스란히 사진 속에 담겨지는 도시 파리이지만,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이 도시의 절정의 순간과 그 풍경 속을 살아가는 파리지엔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한 사진가가 있습니다. 바로 로베르 두아노인데요 파리의 시청 앞에서 키스를 나누는 로맨틱한 연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신 적이 있나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 작품은 바로 로베르 두아노의 사진입니다. 1912년 파리에서 출생한 로베르 두아노는 파리의 디자인 전문학교인 에콜 에스티엔느에서 공부한 후 1930년을 풍미한 사진작가로 활약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파리 시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예술사진들을 발표했으며, 1950년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 <시청앞에서의 키스>라는 걸작으로 남을 사진을 탄생시키게 됩니다.



국내에서도 인기리에 전시되었던 로베르 두아노의 전시 제목이 <로베르 두아노, 그가 사랑한 순간들>이었던 것처럼, 그의 작품은 어린이나 노동자 등 평범한 파리 시민들의 삶을 사실적이고 낭만적인 흑백사진에 담아냈다는 특징을 지니는데요. 프랑스의 신문과 잡지, 그리고 미국의 <라이프>와 <포춘>지 등에서도 사진기자로 일하며 많은 사진 작품을 남기며 다큐멘터리 사진의 거장이라는 타이틀도 얻었습니다. 흑백사진 속에 정지된 파리의 모습, 그리고 파리라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킵니다. 삶과 노동, 그리고 여가와 사랑. 다양한 군상으로 그려지는 파리의 풍경을 담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로베르 두아노의 작품 속에는 유머감각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배경과 피사체를 묘하게 중첩시켜놓음으로써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구식 화장실에서 나란히 서서 볼일을 보는 꼬마들이나, 자신은 비를 맞으면서도 첼로에게는 우산을 씌워주는 남자의 모습, 두 발로 서 있는 개들과 물구나무를 선 소년 등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모습 속에 해학적인 순간을 끄집어내기도 했는데요. 그의 모델이 된 인물 중에는 피카소도 있습니다. 로베르 두아노의 <피카소의 빵>에서는 피카소마저 아주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의 한 순간에 놓여져 있습니다. 일상에서 발견하는 순수한 아날로그 감성,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움 속에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할 줄 아는 사진가 로베르 두아노가 그린 파리의 풍경들은, 평범함의 소중한 의미를 담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가만히 놓아두면 그저 강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일상의 풍경이지만, 하루하루 똑같아 보이는 풍경 속에서도 다른 모습을 포착해내고, 아름다운 순간을 잡아챌 수 있는 예술가들. 그런 예술가들이 있기에, 평범한 삶의 모습도 더욱 아름다운 순간으로 간직되고 기억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문득 공장에서 찍어낸 듯 비슷비슷한 모습의 일상이 무료하게 느껴질 때, 소피칼의 세상을 낯설게 보는 법을 조금씩 흉내 내어 보거나 아름다운 시절의 파리의 모습을 보며 잠시 행복한 감상에 젖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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