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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노트르담 성당/노트르담 드 파리/중세 고딕 건축물] 괴수들이 지키는 신의 정당, 가고일(Gargoyle) 이야기

한 해에도 약 978만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세계 1위의 관광 도시, 파리. 에펠탑,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 몽마르뜨 언덕 등 파리 여행의 필수 코스인 곳들도 있지만, 도시 전체가 하나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시내 곳곳에 자리해있는 정교하고 웅장한 건축물들 또한 여행 코스에 빼놓을 수 없는 곳들입니다. 오랜 역사를 지나 현재까지 지켜온 건축물들인 만큼, 각각의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사연들도 흥미로운데요, 노트르담 대성당 역시 그 중 하나입니다.


건축가와 소설가의 위대한 합작, 노트르담 대성당



출처: Wikipedia


프랑스 파리의 중심은 과연 어디일까요? 바로 프랑스의 다른 도시와의 거리를 나타내는 지표인 ‘포앵제로(Point Zero)’가 새겨져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입니다. 중세 고딕건축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보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전후좌우의 외관과 성당 내부의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 등으로 유명한 곳인데요. 노트르담 대성당을 설명할 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중세건축의 대명사이자 상징으로 불리는 비올레-르-뒥(Eugene Viollet-le-Duc)입니다. 중세 건축의 핵심이었던 교회와 귀족의 건축물들은 1789년부터 1799년에 이르는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상당수 파괴되거나 훼손되었습니다.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중세의 건축물들은 하나씩 복원되기 시작했는데요. 바로 건축가 비올레 르 뒥은 그 중심에 서 있던 인물입니다. 



출처: Wikipedia


중세 건축의 복원 과정과 복원에 대한 관점에 있어 비올레 르 뒥의 독특한 가치관이 노트르담 대성당에 녹아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건축의 복원이라는 것은 단순히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 중건의 차원이 아닌, 건축가의 창의력을 더해 현재의 모습을 토대로 과거의 모습을 재해석하는 의미를 지녔는데요. 노트르담 대성당 곳곳에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 수많은 성인들의 석상처럼, 그저 화려한 대성당의 모습이라고 지나치며 치부해버리기엔 너무나 세심하고 정교한 건축 디테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비올레 르 뒥은 단순히 건축이라는 분야를 넘어 중세라는 시대에 관심과 애정으로 중세문화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책을 엮어 내기도 했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비롯한 많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중세 건축물들이 비올레 르 뒥의 손을 거쳐갔습니다.


빗물받이를 장식한 대성당의 괴수들



출처: Wikipedia


중세 문화에 각별했던 건축가 비올레 르 뒥의 수많은 습작 속에서는 기괴한 괴수들의 그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스러운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괴물’이라는 전설의 생물체가 어떻게 성당건축물을 장식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에게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원이 착수되기 전인 1831년 빅토르 위고는 그의 대표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Notre-Dame de Paris)>를 출간했습니다. 이 소설 속에 묘사된 노트르담 대성당은 음산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묘사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 콰지모도의 괴기한 모습 또한 대중들에게 인상 깊게 각인되었는데요. 그러한 이유로 복원 전의 노트르담 대성당보다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프랑스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유래한 비올레 르 뒥의 괴물들은 프랑스 중세 건축에서 ‘가고일(Gargoyle)’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프랑스 루앙지방에는 ‘가구일(Gargouille)’이라는 괴수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한 성인이 박쥐의 날개와 긴 목을 가진 용 ‘가구일’을 사로잡아 불에 태운 다음, 타지 않고 남은 머리와 목을 대성당에 붙여두고 사악한 악령들을 쫓게 했다는 전설인데요. 지붕에 고이는 빗물을 외부로 뱉어내는 토수구인 ‘가고일(Gargoyle)’은 이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비올레 르 뒥은 건축물 밖으로 삐죽 나와있는 낙수물받이에 괴물들을 장식해, 단순한 빗물 받이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서로 다른 포즈와 표정의 각양각색의 괴물들이 지키는 성당은 어딘지 기괴한 느낌이지만 평범한 건축물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대단한 개성이 돋보이는데요. 이렇듯 상상력을 자극하는 한 건축가의 빼어난 창의력 덕택에 노트르담 대성당의 독특하고 색다른 매력은 전세계의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던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마치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처럼 생생한 모습으로 파리의 한 가운데에 살고 있는 괴수들. 로맨틱한 세느강이 흐르는 낭만의 도시라고만 여겨졌던 도시 파리에, 이런 신비로운 전설이 깃들어져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운데요. 건축물을 지은 당대의 건축가와 문학가, 예술가들이 모두 영감을 주고 받고 시대상을 반영해 이렇게 세계적인 유산이 탄생시켰다고 생각하니, 파리라는 도시가 새삼 더 크게 다가옵니다. 높게 우뚝 솟은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들 속을 살아가며 파리의 중세 건축물을 떠올려 보니, 사소한 장식물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개성을 녹여낸 중세 예술가들의 열정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