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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고전 문학/가을에 관한 시 추천/가을 문학작품 추천] 낭만적인 프랑스의 고전 가을 시

옷깃을 힘주어 여미고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스산한 바람, 한껏 푸르고 높아진 하늘, 그리고 고개를 돌려보니 문득 달라진 색채로 물들여져 있던 영화 같은 풍경.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리는 징후들이 하나, 둘 눈에 띄며 마음도 함께 설레어 오는 계절, 가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과 어울리는 풍경이 녹아든 문학작품을 읽는 것도 이 낭만적인 계절에 푹 빠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일 것 같은데요. 그 중에서도 우수와 낭만으로 가득찬 가을 문학의 정수, 프랑스의 고전 가을 시 3편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폴 베를렌의 <가을의 노래(Chanson d'automne)>



폴 베를렌은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중의 한 명입니다. 위대한 작품을 썼지만 세속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시인들을 일컫는 ‘저주받은 시인들’ 중의 한 명이기도 했는데요. 유복한 가정에서 귀한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온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난 베들렌은, 점차 호기심은 많지만 참을성이 없고, 자신의 고집과 본능대로 하려는 성향의 사람으로 자라났습니다. 아홉살의 나이에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학업에 충실한 의젓한 소년으로 변모하는 듯 했던 베들렌은 4학급 시절, 공부에 흥미를 잃고 오직 시를 짓는 데만 골몰하는 문학소년이 되었습니다. 보들레르, 테오도르 드 방빌, 빅토르 위고 등 당대 최고라 불리는 문학가들의 작품에 푹 빠져, 그만의 다양한 작품들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가을의 노래 (Chanson d'automne)


가을날

비올롱의 가락

긴 흐느낌

하염없이

내 마음 쓰려라


종소리

가슴 메여

나 창백히

지난날 그리며

눈물 흘리네


쇠잔한

내 신세

모진 바람 몰아치는 대로

이리저리 불려다니는

낙엽 같아라



영화 <토탈 이클립스(Total Eclipse), 1995>


결혼과 동시에 순탄하리라 예상되었던 그의 삶은 점점 뒤틀리게 됩니다. 매일 같이 심해지는 술주정에 결혼생활 역시 점점 파국으로 치달아 불행은 끝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참회하는 마음으로 쓴 시집 <예지>로 ‘시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랭보’를 만난 이후 그의 독단적인 성향은 다시 돌아와 결국 자신의 연인을 총으로 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 베를렌의 시에서 느껴지듯, 그는 괴롭고 외로운 상황에 처한 이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단순하지만 진실한 감정 묘사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불행하고 궁핍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던 시인의 삶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던 주옥 같은 작품들을 보니, 불운한 시인의 삶이 더욱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레미 드 구르몽의 <낙엽(La Feuille)>



레미 드 구르몽 역시 그리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한 시인 중의 하나입니다. 구르몽은 노르망디 귀족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앓은 천연두로 얼굴이 곰보가 되어 사교계에 나서기를 꺼려했다고 하는데요. 그러한 개인의 사정으로 홀로 고독한 생애를 보내며 시를 써왔습니다. 구르몽 역시 인간 내면과 감각의 세계로 눈을 돌린 상징주의 문학의 옹호자였습니다. 한번도 대학의 수업을 받지는 못했지만, 파리 국립도서관의 사서로 일하기도 했는데요. 다양한 소설과 희곡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해왔지만 무엇보다 구르몽은 문예지 <메르퀴르 드 프랑스> 등에 평론을 발표하며 넓은 학식과 섬세한 분석력을 높이 평가 받았던 비평가로 유명합니다. 


낙엽 (La Feuille)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비록 고독한 생애였지만, 구르몽은 자유로운 입장을 가지고 세련된 취미와 학식을 시, 소설, 평론등에 마음껏 펼쳐 보였던 재능 넘치는 작가였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상징시인 <낙엽>은 여전히 전 세계에서 널리 읽혀지고 있는 작품인데요. 구르몽의 시집 <시몬>에 수록되어있는 이 시는 작가 특유의 독특한 감각과 상상으로 부조된 ‘시몬’이라는 여성에 대한 깊고 강렬한 애정이 녹아있는 시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라고 반복적으로 건네는 후렴구가 시의 음악성을 부여하면서, 묘한 분위기를 더해주며 오늘날까지 널리 애송되고 있습니다.


자크 프레베르의 <고엽(Les Feuilles Mortes)>



자크 프레베르는 초현실주의 작가 그룹에 속하여 많은 작품 활동과 다방면으로 활약 했던 프랑스의 시인입니다. 1900년 파리 교외의 뇌이쉬르센에서 태어난 자크 프레베르는 초등교육을 마친 뒤 진학을 포기하고 봉마르셰 백화점에서 일하며 생활을 이어가다, 1918년 군대에 복무하였습니다. 1930년대까지는 초현실주의 작가 그룹에서 시인으로 활약하였지만, 그 이후로 그의 관심은 영화로 향해 <천국의 아이들>과 같은 명작을 쓰기도 했는데요. 자크 프레베르가 창작한 후기 시에서는 샹송풍의 흔적이 많이 엿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불안의 시대에 맞서는 풍자와 소박한 인간애가 작품으로 하여금 친근감을 불어넣으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고엽 (Les Feuilles Mortes)


아, 회상해 주기 바란다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했던 행복한 날들을…….

그 무렵에 인생은 덧없이 아름답고, 태양도 지금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오.

고엽은 삽으로 퍼서 모아진다네. 알다시피 나는 잊을 수가 없다오.

추억과 회한도 또한 그 고엽과 같다는 것을……. 

그리고 북풍은 그것을 차가운 망각의 밤 속으로 실어 간다오.

 당신이 내게 불러 준 그 노래가 나에겐 잊혀지지 않는다오.

그것은 우리들과도 닮은 하나의 노래.

나를 사랑하고 있었던 당신. 당신.



영화 <밤의 문(Les portes De La Nuit), 1946>


<고엽>은 샹송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시인인 자크 프레베르가 작사하고 조제프 코스마가 작곡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이자 배우인 이브몽탕이 불러 불후의 명곡으로 남았는데요. 처음 극장에서 초연하려던 발레 <랑데부>를 위해 만들어졌다가, 영화 <밤의 문>을 시작으로 스크린 속에서, 또 많은 청중들 앞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불러져 왔습니다. 가을이 오고, 단풍이 들고, 이내 말라서 땅으로 떨어져버린 가을 잎사귀를 뜻하는 ‘고엽’. 샹송 <고엽> 역시, 가장 빛나고 생기 넘치던 사랑의 날들이 지나고, 돌이킬 수 없는 회환을 되새기며 행복했던 시간 사랑하는 이를 추억하며 부른 노래인데요. 가슴 깊이 진한 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아직까지도 애절한 사랑노래로 꼽히고 있습니다. 



꽤 오랜 시간 거슬러 올라간 과거부터, 머지 않은 가까운 과거까지. 그 긴 시간 동안 매년 돌아왔을 ‘가을’이라는 계절을 바라보며 시를 짓고 노래를 불렀던 예술가들의 작품을 곱씹어보니, 가을이 한걸음 더 성큼 다가온 것이 느껴지는데요. 삶에 대한 성찰과 후회, 그리고 사랑이 남긴 충만한 행복감과 후회들을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감정에 대한 깊은 공감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불운한 삶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길이 남을 작품들을 탄생시킨 시인들의 생애에 늦게나마 위로를 건네며 다가 오는 가을, 가을 시를 음미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