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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수상자/어두운 상점들의 거리/프랑스 작가] 텅 빈 마음의 자리를 채우는 작가, 파트리크 모디아노

스웨덴의 과학자 노벨의 유언에 따라, 1901년부터 해마다 문학적인 영역에서 인류를 위해 최대의 공헌을 한 우수한 작가에게 수여되고 있는 ‘노벨 문학상’. 매년 이 맘 때쯤 발표되는 노벨 문학상은, 전 세계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뛰어난 작가들 중 과연 누구에게 그 영광이 돌아가게 될 지 매번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곤 하는데요. 종종 작가 개인의 작품들 중 주목할만한 특정작품이 거론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노벨 문학상은 한 작가의 인생에서 쓰여진 작품 전체를 통틀어 수여하게 됩니다. 2014년, 이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상의 주인공은 바로 프랑스 작가, ‘파트리크 모디아노’ 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속에서 피어난 기억의 예술



파트리크 모디아노는 1945년, 프랑스 파리 근교인 불로뉴비양쿠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그리 평범하지만은 않은 환경 속에서 이루어졌는데요. 부모님의 잦은 부재로 인해 정부의 손을 빌려 중등교육을 마쳐야만 했던 모디아노는, 그러면서 그의 형제 루디와 각별한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깊은 유대를 가졌던 형제 루디는 안타깝게도 10살에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요. 유년시절 어쩔 수 없이 경험해야만 했던 특수한 상황들과, 그로 인해 형성되었을 그의 애수 깃든 감성이, 모디아노의 많은 소설들을 과거의 향수 속에 머물러 있게 했습니다. 사실, 파트리크 모디아노라는 작가에게 ‘과거’는 그의 작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모디아노의 많은 작품들은, 그가 태어난 해를 전후한 과거에 상당부분 머물러 있음을 보여줍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신분이었던 아버지는 검거를 피하기 위한 기피 생활을 해야 했고, 그의 어머니 역시 자신들의 본명을 알리지 못한 채 숨어 살아야만 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과거’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던 모디아노에게 있어 반드시 되찾아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노벨상을 관장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모디아노를 2014년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붙잡을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기억의 예술로 환기시키고, 나치 점령 당시의 생활세계를 드러냈다"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한편으로는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피어난 그의 문학적 감성이, 삶에 대한 섬세한 탐구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텅 빈 환상이 건네주는 위로의 말



파트리크 모디아노가 각본에 참여한 영화 <라콤 루시앙(Lacombe Lucien), 1974>


그의 나이 열여덟 살이 되던 해, 모디아노는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1968년에는 독일 점령기의 파리를 완벽하게 되살린 소설, <에투알 광장>으로 로제 니미에 문학상과 페네옹 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작가로서 데뷔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4년 후, 그의 세번째 작품 <외곽도로>로 아카데미 프랑세스 소설 대상을 거머쥐고, 1975년에는 <슬픈 빌라>로 또 한번 상을 받게 되는데요. 모디아노는 작가로 데뷔한 이래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과 독자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아왔습니다. 특히 그의 작품들 중에서 <슬픈빌라>, <청춘시절>, <8월의 일요일들>, <잃어버린 대학>은 영화로 다시 만들어지면서,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대중들 앞에 서기도 했습니다.



1978년, 파트리크 모디아노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그의 대표작이자 여섯번째 소설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발표합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기억을 잃은 한 퇴역 사립 탐정 ‘기 롤랑’이, 몇 장의 옛 사진을 단서로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입니다. 구겨진 사진 한 장과 신문의 부고란 외에 어떤 것도 의지할 곳 없이 소멸된 자아를 찾아가던 그는, 결국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 머물게 되는데요. 그저 한줄기 실루엣에 지나지 않는 공기 속을 떠도는 유령 같은 연약한 인간의 존재를, 몽상적인 언어로 다룬 이 작품은 전 세계의 주목과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4년,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수작들은 다시 한번 사람들로 하여금 읽혀지며 위로를 베풀고 있습니다.




올해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프랑스 문학은 2008년 장 마리 구스타브 르 클레지오에 이어 6년 만에 다시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또한 올해의 수상은 프랑스 작가로는 11번째 수상이기도 한데요. 담담하지만 아름다우며, 간결하고 침착한 모디아노의 문장은, 잃어버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소외 받은 사람들을 다시 비춰줍니다. 모디아노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를,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길이 글을 쓰는 것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로 시작하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의 첫 문장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모두를 위로하며 어루만져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