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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람미술관] 6월 전시, 모딜리아니 - 몽파르나스의 전설

▶자신만의 화풍으로 그려낸 인물화로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몽파르나스의 전설, 모딜리아니의 전시를 소개합니다.◀



나른하게 잠들어있던 감수성에, 생기 넘치는 에너지를 불어넣어 줄 프랑스 문화원이 함께하는 6월 전시, <모딜리아니, 몽파르나스의 전설>을 소개합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지만 파리의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일생 동안 만난 이들의 모습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남긴 화가, 모딜리아니. ‘몽파르나스의 전설’로 불렸던 그가 비극적인 삶 속에 피워냈던 예술의 향연, 지금 만나보겠습니다.


■ 파리의 이방인, 몽파르나스의 전설이 되다
 

 


루이까또즈에서도 소개해드린 바 있는 파리의 ‘몽파르나스(Montparnasse)’, 기억하시나요? 파리를 여행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아마 익히 듣게 될 지명 ‘몽파르나스’는, 바로 미술가 모딜리아니가 그의 예술적 재능과 천재성을 마음껏 피워내며 미술사에 길이 남은 명작들을 탄생시킨 곳입니다. 1884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모딜리아니는, 어머니와의 여행 중 방문했던 여러 곳의 미술관에서 예술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시작한 모딜리아니는 스물 두 살이 되던 해인 1906년,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로 건너오게 됩니다.




파리로 온 모딜리아니는 몽마르트와 몽파르나스에 정착하면서 자신의 예술활동을 이어갑니다. 당시 몽파르나스는 예술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재능 있는 예술가들의 창작과 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났던 곳으로, 특히 189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파리에서 예술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곳으로 거듭나게 되는데요. 이곳에서 모딜리아니는 키슬링, 수틴 등 파리를 주 영역으로 활동한 이른 바 ‘에콜 드 파리(Ecole de Paris)’의 화가들과 친분을 맺으며 영감을 얻고, 또한 그 일원으로서 누구도 규정지을 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 양식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 인물화를 통해 타인의 내면과 대화한 미술가
 



(좌) 폴 알렉상드르 박사의 초상, 1909 / (우) 폴 기욤의 초상, 1915


비록 35세라는 나이로 짧은 생애를 마감했지만, 모딜리아니는 그간 400점이 채 되지않는 유화 작품만으로 20세기 미술사의 한 획을 그었습니다. 특히 모딜리아니는 미술사의 격동기라 불린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미술시대에, 인물 중심의 회화를 집요하게 추구한 인물로 남아있는데요. 마치 당대 파리의 문화예술계 인물들의 인명사전을 보는 것처럼 화가, 조각가, 소설가뿐만 아니라, 몽파르나스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익명의 인물들까지 그의 작품들은 그의 삶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좌) 흰 옷깃의 여인, 1917 / (우) 앉아 있는 잔느 에뷔테른느, 1918


모딜리아니가 왜 그토록 인물화를 고집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분분하지만, 그가 인물화를 그리는 작업을 통해 타인의 내면세계와 교감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그가 그린 인물화의 가장 큰 특징인 동공 없는 눈은 인물의 내면세계로 통하는 상징이 되었고, 검은색에서 점차 터키색으로 변해간 눈 색은 그의 내면의 변화를 대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입체감이 느껴지는 얼굴과 곡선으로 마무리한 몸은 대비효과를 주면서, 그의 독창성을 잘 드러내주었는데요. 단순화된 형태와 절제된 표현은 모딜리아니의 예술의 본질을 나타내며, 미술사의 그의 이름을 깊이 남게 했습니다.



20세기 초 미술계의 아웃사이더로,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낸 모딜리아니의 전시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6월 26일부터 10월 4일까지 만날 수 있습니다. 국내 최초의 회고전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전 세계 40여 공공미술관과 개인소장 진품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아 아시아 최대 규모로 진행되는데요. 짧은 생애 동안 그가 남긴 강렬한 작품들과 그 속에 깃든 모딜리아니의 예술혼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