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따라 다양한 작품들을 보고 싶었던 관객들의 눈이 번쩍 뜨일만한 전시, <피카소에서 프란시스 베이컨까지>가 예술의 전당에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국립미술관 재단의 국보급 소장작품이 한국을 찾아온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에서 만나보기 힘들었던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들도 직접 만나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깊어가는 겨울, 예술적 감성에 푹 빠지게 해 줄 전시소식을 만나볼까요.


■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파블로 피카소, <알제의 여인들>


‘피카소’는 스페인 태생이지만, 실제로 파리에서 ‘피카소 박물관’을 만나볼 수 있을 정도로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던 화가라는 사실, 미술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많이 아실 텐데요. 피카소는 그의 활동기간 중 1901년부터 1904년까지를 일컫는 청색시대를 거쳐, 입체주의 미술양식을 창조하였고, 결국 20세기 최고의 거장이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피카소의 청색시대를 대표하는 작품 「검소한 식사」 석판화와, 「알제의 여인들」 드로잉 석판화 작품 시리즈 등을 만나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시리즈는 전세계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갱신한 유화를 위한 드로잉 시리즈라고 하네요.

 


조르주 브라크, <꽃과 팔레트>


‘브라크’는 피카소와 함께 입체파 운동을 창시했던 화가입니다. 특히 종이 따위를 찢어 붙이는 콜라주의 일종인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기법을 통해 그만의 독창적인 화법을 보여주었는데요. 브라크는 파피에 콜레를 통해 ‘그림으로 물체와 물체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되찾으려 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주로 정물화에 집중하여 대상을 자유롭게 분해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형태와 공간을 구사했던 브라크의 회화를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물랭가의 살롱>


‘로트렉’은 프랑스의 화가이자 석판화가입니다. 14세부터 15세에 걸쳐 두 번의 사고에 의해 양다리가 골절되어 하반신을 쓰지 못하게 되었는데요. 로트렉은 ‘물랑루즈’ 등의 유흥가에 출입하며 파리의 풍속과 애환을 민첩하게 그려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로트렉의 ‘카페-콘서트’ 시리즈 작품 중 7점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물랑루즈의 스타 ‘잔느 아브릴’과 전설적인 가수 ‘이베트 길베르’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 낸 일러스트 석판화들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네요. 

 


페르낭 레제, <곡예사와 음악가들>


‘레제’는 피카소와 함께 입체파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에 반대하여, 물질을 포함한 모든 자연현상을 힘으로 환원하여 생각하는 것을 뜻하는 ‘다이나미즘(Dynamism)’을 기계문명에 이입하여 표출하려 했는데요. 자연과 인간생활의 큰 구도를 즐겨 다루면서, 단순한 명암이나 명쾌한 색채로써 대상을 간명히 나타내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두 작품은 원통형의 기하학적 형태로 대상을 표현하는 레제의 대표적인 회화양식을 보여줄 예정이라고 합니다. 



전시 <피카소에서 프란시스 베이컨까지> 에서는 프랑스 화가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과 장 뒤뷔페(Jean Dubuffet)의 작품들까지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전반적인 근·현대미술에 관심이 많은 관객들 뿐만 아니라, 프랑스 근·현대 미술에 대해 꼼꼼히 알고 싶은 관객들까지 만족시킬만한 전시가 될 것입니다. 서양미술 거장들의 작품 100여점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귀한 기회!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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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귀족들의 전유물이였던 예술품은 오늘 날 좀 더 다양한 모습으로 쉽게 대중에게 다가서고 있습니다.  20세기 이후 예술이 대중화를 띄기 시작하면서 예술품을 감상하는 것부터 소유하는 것까지 여러가지 방법과 형태가 등장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파리까지 먼거리를 여행하지 않아도 사이버미술관을 통해 루브르박물관의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고, 의자 1개에 수천만을 호가하는 유명 디자이너의 디자인 의자는 조그만 미니어쳐로 생산되어 앉을수는 없지만 예술품을 ‘소유’할 수 있는 욕구를 충족시킵니다.

‘당신은 예술품을 몸에 걸치고 다니는 상상을 한번도 해보신 적이 없습니까?’

지난 1월, 파리에는 이 한 줄의 짧은 전시 광고문구가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시켰습니다. 그리고 만레이, 자코메티, 피카소, 루이스 부르조아, 니키 드 생팔 같은 이 시대의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기위해 많은 파리지앵들이 전시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들의 작품이 아닌, 작품의 상징을 표현한 장신구를 만나기 위함입니다. 갤러리 크레딕 뮤니시팔 드 파리에서 열린 전시 ‘Bijoux d’artistes (예술가의 장신구)’는 이렇게 예술가들의 상징을 담은 장신구 콜렉션으로 전시장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예술가의 장신구

마레에 위치한 르 크레딕 뮤니시팔 드 파리 (le crédit municipal de paris) 본사 한켠에 자리해 있는 갤러리의 이번 전시는 2009년 프랑스 브장송 시간 박물관에서 열린 전시를 파리로 옮겨 연장, 기획된 전시입니다. 전시장 안은 보석의 화려함과 예술품의 상징성이 서로 만나 가장 작고도 화려한, ‘또’다른 조각품으로 완성된 160개의 장신구들이 그 빛을 뽐내고 있습니다. 루이스 부르조아의 거미모양 브로치, 피카소의 도자기 브로치, 만레이의 미니멀리즘 반지 등 그 들의 작품만큼이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장신구들은 각자의 개성을 확실하게 가진 채 예술가의 상징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칫 이 장신구들은 예술품을 모방한 미니어쳐의 일부분이라고 취급할 수도 있으나 이 것들은 엄연히 각각의 예술가의 서명이 적힌 하나의 ‘작품’으로서 ‘아티스트 비쥬(장신구)’라 불리웁니다.

작지만 큰 전시회

전시장 유리 진열대에 번호만이 붙여져 전시된 작품들은 관람객들에게 마치 고급 보석상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전시회는 작품들의 크기가 작은 것을 감안해 작품 하나 하나에 리스트를 붙이는 것 대신 번호를 붙이고 관람객들에게 도표를 나누어 줌으로서 좀 더 쉽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20, 21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상징으로 완성된 장신구이기에 도표를 보기 전 작품만을 보고 어떤 예술가의 작품인지 맞춰보는 것도 이 전시의 또 다른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관람객들이 ‘아티스트 맞추기’ 퀴즈를 즐기며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은 전시장 안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 크기 않은 갤러리 전시장이지만 쭉 둘러보고 나면 마치 커다란 현대 박물관을 꼼꼼히 다 둘러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건 이 전시가 주는 가장 큰 혜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장신구과 예술작품. 이 둘의 공통점은 기본적으로 ‘미’를 추구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또한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의 삶을 담고 있는 물체이기도 합니다. 장신구를 통해 현대미술의 지난 세기를 조명해보는 이번 전시는 그 특색만큼이나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장신구로 재 탄생한 예술작품. 언젠가는 작은 보석함이 나만의 미술관이 될 날도 멀지 않은 듯합니다.

파리통신원-임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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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취향을 다투는 친구에서부터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커리어까지 우리는 누군가와 라이벌관계에 놓여지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는 창의력이 무기인 예술의 세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현대의 우리들에게 거장으로 꼽히는 드높은 명성의 예술가들도 예외일수는 없습니다. 오늘 소개될 라이벌의 주인공은 돈독한 사제지간이 질투와 야망으로 인해 라이벌로 변모한 20세기 미술계의 거장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입니다.


화려한 색채, 앙리 마티스

<붉은 실내>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 거장으로 꼽히는 앙리 마티스 1869년 프랑스 북부 노르파드칼레의 르샤토캄프레시스에서 출생했습니다. 법률을 배우러 파리로 유학을 왔다가 병으로 입원했던 병실에서 가끔 그림을 그리는 옆 사람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그를 화가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이때가 그의 나이 스물 한살이였죠. 당시 화가들은 사물을 정확하게 그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에 비해, 마티스는 ‘진짜처럼 보이는 그림’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주전자 그림을 보고 “와, 진짜 같아!”라는 탄성보다 “녹색 주전자 속에 푸른 숲이 담겨 있는 것 같아”라고 마음으로 느껴주길 바랬죠. 이런 그의 고집은 나무는 녹색, 바다는 파란색, 등 규범화 된 색을 과감히 이탈했고, 어울리지 않는 컬러들의 조합을 선보였습니다. 그는 ‘색채를 해방시킨 화가’ 로서 ‘야수파 화가’의 선동자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형식과 시대를 넘어선, 파블로 피카소

<지중해의 풍경>


미술에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피카소의 이름은 모르는 이가 없죠. 파블로 피카소는 20세기 거장 중에 거장으로 최고의 명성을 자랑합니다. 그는 1881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한 화가인데요. 15세에 이미 화가로 데뷔할 정도의 천재성을 보인 그는 나이제한에도 불구하고 마드리드의 왕립미술학교에 조기 입학했습니다. 19살이 되던 해에는 ‘학교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서’ 프랑스 파리로 건너와 유학생활을 시작하게 되죠. 친구의 죽음, 가난, 굶주림으로 그에게 가장 암울했던 ‘청색시대’와 연인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만나 황홀했던 ‘장밋빛시대’를 거쳐 1907년 <아비뇽의 처녀들>을 시작으로 비로소 그만의 회화 법을 선보이게 됩니다. 이 때부터 피카소는 ‘천재화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형식을 파괴하고 시대를 초월한 입체파 화가로써 입지를 굳히게 됩니다. 

<아비뇽의 처녀들>


거장과 천재화가, 끈끈한 사제지간

어릴 적 부 터 천재화가로 불리며 이미 15살에 화가가 된 스페인출신의 피카소는 부푼 꿈을 안고 찾은 예술의 본고지, 프랑스 파리에서 작품을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천재성을 인정받으며 조기 입학까지 불사했던 그였지만, 고향에서와는 달리 아무도 전시장을 찾는 굴욕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이 때 차가운 냉대에 낙심하던 피카소의 그림을 알아준 단 한 사람이 있었는데요.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분명 천재적인 화가”라고 평해준 사람은 다름아닌 앙리 마티스 였습니다. 앙리 마티스는 이미 독자적인 화법을 선보이며 그 당시 미술계의 거장으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부터 피카소는 자기를 인정해 준 마티스를 멘토로 인정하면서 돈독한 사제지간으로 각별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 질투로 얼룩진 라이벌

20세기 초 사진이 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잡게 되면서 화가들은 좁아진 입지를 넓히기 위해 새로운 화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 때 마티스는 화가의 재해석이 가미된 화법을 찾아야 한다며 ‘자신의 화법을 추종’하도록 주장했는데, 이에 피카소가 “사물의 형태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반기를 들면서 이들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미술계에서 1인자가 되고 싶은 피카소의 야망이 마티스라는 스승의 장막을 뚫고 나온 것이죠.
사실 이전부터 이 둘의 스타일은 극명하게 다른 색깔을 보였습니다. 예민하고 냉철하며 신중한 마티스에 비해 피카소는 열정적이고 직감에 의존했죠. 어쨌거나 이 시점을 계기로 둘은 대치상태에 돌입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됩니다. 마티스는 어느 것 하나도 버리지 못하는 피카소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 콜라주 작품을 쓰레기로 비하했고, 피카소는 정해진 시간에 낮잠을 자는 것조차 빼놓지 않고 계획표대로 50년 동안 빼놓지 않고 매일같이 반복해온 마티스를 경멸하며 서로를 헐뜯었죠. 이에 분노한 마티스는 ‘12살이나 어린 애송이 피카소를 다시는 보지 않겠노라’ 선언하고 그 후 10년간 단 한번도 보지 않았습니다.


서로를 향한 진실된 마음

피카소 <캘리포니아 화실>


최초로 나를 인정해준 스승, 나의 뒤를 믿고 따르는 든든한 제자의 관계에서 무려 10년간을 등을 돌린 절연의 관계가 되어버린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서로에 대한 진실한 속내를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1954년 8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앙리 마티스는 죽음의 문턱에서 “내 그림을 피카소 그림과 함께 전시하지 말아달라. 불꽃같이 강렬하고 번득이는 그의 그림들 옆에서 내 그림들이 초라해 보이지 않게. ”라고 그를 향한 마지막 찬사를 보냈고, 피카소는 앙리마티스가 생을 마감한 후에야 “나를 괴롭혔던 마티스가 사라졌다. 나의 그림이 뼈대를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마티스다. 그는 나의 영원한 멘토이자 라이벌이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큰 슬픔과 자책에 빠진 피카소는 장례식장을 차마 찾지 못한 채 <캘리포니아 화실>이라는 그림을 남기는 것으로 애도를 대신했습니다. 피카소는 1973년 4월 8일 92년간의 생을 그림을 그리던 중 마감했습니다.

이름을 남긴 예술가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본의 아니게 라이벌 구도에 놓여있는 관계가 많이 있습니다. 까미유와 로댕, 고갱과 고흐, 살리에르와 모차르트…불꽃 같은 사랑이 파멸로, 끈끈한 우정이 타인으로 돌아서버린 경우도 많지만,
하나 분명한 건 서로의 열정이 식지 않도록 끊임없이 불을 지펴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에 이른 후에야 비로소 서로를 인정하게 된 마티스와 피카소, 이들은 라이벌임과 동시에 서로에게 든든한 동반자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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