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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흐/반 고흐 in 파리/예술의전당]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지난 11월 8일, 특별한 만남의 자리가 열렸습니다. 바로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되는 <불멸의 화가Ⅱ 반 고흐 in 파리>전이 그 것 인데요.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였지만 프랑스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던 그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고흐 개인전 가운데 가장 많은 자화상이 소개된다고 합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선교사 활동도 했지만 “La tristesse durera toujours(고통은 영원하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채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 반 고흐.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그의 작품에서는 살아 숨쉬는듯한 터치감과 함께 어떤 화가보다 고뇌하는 삶을 보냈던 그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사랑했던 누구보다 소박하고 인간적인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요. 대 다수의 작품 속에서 엿볼 수 있는 그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다

이번 전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흐는 37년의 짧은 생을 사는 동안 무려 40점이 넘는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그가 붓을 처음 잡은 것은 26세이며,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것은 1886년 파리에 머문 시기였는데요. 1890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4, 5년 동안 남긴 고흐의 자화상은 자신의 병으로 인한 자기응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할 수 있습니다.
반 고흐의 자화상은 그가 자신의 귀를 자른 시점부터 변화를 겪게 됩니다. 초기의 자화상은 치밀한 붓질과 꼼꼼한 음영 표현이 눈에 띄는 반면, 고갱을 만나고 병을 얻게 된 후 자신의 귀를 자른 모습의 자화상은 세부묘사가 생략되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강조된 것을 알 수 있는데요. 특히 잘린 귀에 붕대를 감은 그림은 고갱과 결별 후 병원에 홀로 남아 가장 사랑하던 동생 테오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린 그림으로 “편지보다는 초상화가 내 상태를 더 잘 보여줄 거라고 믿는다”며 작품을 완성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이 작품 배경에 그려진 후지산이 보이는 일본풍의 그림은 일본판화에 빠져있던 화가의 모습과 병마와 싸우면서도 놓지 않았던 창작에 대한 열망을 엿보게 해주는데요. 고흐의 자화상은 극단의 선택을 하기 전 견디기 힘든 고독과 고통을 견디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였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하다

주변사람들을 향한 마음이 컸던 만큼 그의 외로움 또한 컸던가요. 그는 자신의 자화상뿐 아니라 그의 주변의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갈망했습니다.
그가 사랑했던 주변인물 한 명은 바로 마담 지누입니다. 초상화 ‘아를의 여인, 마담 지누 (L'Arlesienne Madame Ginoux).’의 주인공인 지누 부인은 고흐가 묵었던 카페의 주인의 아내로 반 고흐가 아를에 정착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인물인데요. 고흐는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아를지방의 전통 민속 옷을 입도록 부탁했고, 방안에서 낡은 책 몇 권을 꺼내와 탁자 위에 놓은채 탁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런 고흐의 모습을 보고 아를에서 함께 생활했던 고갱은 매우 못마땅해 했다고 하는데요, 고갱이 그린 마담 지누의 모습을 보면 고흐의 그림과 확실히 다른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평소 책에는 영혼의 깊은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이 담겨 있다 생각해 책과 함께 마담 지누의 모습을 그려낸 고흐에 비해, 빨강 배경에 남자들과 술병, 지긋이 옆으로 바라보는 눈빛을 표현해낸 고갱의 마담 지누는 동일 인물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요. 훗날 정신이상 증세가 심각해지면서 이 곳을 떠난 고흐는 자신을 보살펴준 지누 부인이 이름 모를 병으로 몸져 눕게되자 자신을 매우 탓했다고 합니다.
또 한 명의 친구이자 모델이었던 사람은 바로 우체부 롤랭이었습니다. ‘우체부 롤랭의 초상(Postman Roulin)’은 고흐에 의해 무려 여섯번이나 그려지게 되는데요, 사랑하는 동생 테오와의 편지를 전달하던 이 우체부는 고흐에게는 행복의 메신져나 다름 없는 존재였습니다. 반고흐는 이런 롤랭을 평소 ‘알코올 중독자 같은 사람’이라 칭했는데요, 고흐가 저녁에 카페에 가면 어김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술로 인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롤랭의 모습(좌, 1888)에 비해 부드러운 미소와 예쁜 꽃 배경이 그려진 모습(우, 1889)는 매우 상반된 느낌을 지니고 있는데요. 오른쪽 작품은 롤랭이 마르세이유로 전근을 가, 그를 그리워하는 롤랭의 아내 오귀스틴을 위해 그려준 초상화로 그림을 보며 남편을 그리워할 그의 아내의 마음을 반영한 고흐의 따스한 배려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밤의 빛에 매료되다

반 고흐는 ‘별을 그리기 위해 밖으로 나갈 것’이라 작성한 한 편지의 내용처럼,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별이 빛나는 밤’이란 작품을 완성합니다. 캄캄한 어둠 속이지만 자신의 색을 가지고 있는 밤의 풍경을 그리기 위해 론 강가로 나간 그는 밤의 빛, 그리고 빛이 투영된 물그림자를 그려내게 되는데요. 밤강가를 거니는 연인들 또한 그려 넣음으로써 포근하고 인간적인 밤의 모습을 완성하게 됩니다.
‘별이 빛나는 밤’이란 같은 이름의 또 다른 작품은 아를에서 15마일 떨어진 생레미 요양원에 입원했을 때 창 밖으로 바라다본 전원 풍경을 묘사한 것입니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오늘 아침 나는 해가 뜨기 한참 전에 창문을 통해 아무것도 없고 아주 커 보이는 샛별밖에 없는 시골을 보았다.”라며 이 작품에 대해 언급하는데요. 소용돌이 치는 밤하늘과 불꽃 같은 사이프러스 나무,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요한 마을의 풍경은 화려한 색감이 꿈틀대는 터치감과 조화를 이루며 강렬하고 낭만적인 작품으로 탄생합니다.

“내가 그림 그리기를 멈출 수 없는 건 단지 그림쟁이의 손을 가지고 있어서야.
네게 묻고 싶었단다. 처음 그림을 시작한 이후로 이 문제를 두고
내가 단 한 번 만이라도 의심하거나 망설이거나 흔들린 적이 있었는지.
내가 끊임없이 싸워왔음을 너도 잘 알거야. 물론 싸움은 점점 더 치열해졌지만 말이야.”

많은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도 끝까지 붓을 놓지 않으며, 처절한 자아성찰을 통해 그 어떤 유명화가보다 강렬하고 개성넘치는 작품들을 세상에 남긴 빈센트 반 고흐.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이야 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이 배워야하는 가장 큰 그의 작품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