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ture/frenchinfrance

[올림픽폐막식/프랑스펜싱/펜싱종주국] 칼 끝에서 느껴지는 품격. 신사의 스포츠 펜싱

지난 7월 28일부터 17일간 숨가쁘게 달려온 2012년 런던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다양한 볼거리를 자랑했던 개막식만큼이나 폐막식 또한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퀸, 스파이스걸스, 뮤즈, 리암 갤러거 등 좀처럼 한 자리에서 보기 힘든 영국의 세계적인 스타들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역대 올림픽 폐막식 중 가장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퀸과 제시제이의 We Will Rock You 퍼포먼스는 마지막까지 전세계인을 하나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죠.

[이미지 출처 : 런던올림픽 공식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London2012]

이렇듯 축제 분위기 속에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 2012 런던 올림픽. 올림픽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는 지금,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에게 놀라움과 환희 그리고 진한 안타까움까지 안겨준 종목이자 올림픽 기간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바로 그 종목, ‘펜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펜싱의 역사

우리는 흔히 펜싱을 이야기할 때 ‘신사’의 스포츠라는 젠틀한 수식어를 부여하곤 합니다. 비록 이번 올림픽에서는 그런 수식어를 무색하게 만드는 신아람 선수의 오심 사건이 있긴 했지만 서로를 겨눈 채 섬세하게 흔들리는 칼 끝과 힘 있게 뻗어나가는 팔, 그리고 날렵하면서도 우아하게 움직이는 다리를 보고 있자면 어느덧 ‘신사의 스포츠’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요.
펜싱은 아마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결투의 형태를 띈 게임'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라는 것이 존재했던 순간부터 결투란 숙명적으로 함께할 수밖에 없었죠. 그 과정에서 검은 오래도록 무기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펜싱 역시 결투에 사용하던 검술에서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고대 로마시대와 중세 그리스도교시대를 거쳐 스페인이 유럽을 이끄는 힘을 갖게 되었던 시절, Diego de Valera에 의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일종의 펜싱 교본이 처음으로 탄생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펜싱의 부흥은 이탈리아 북쪽 지방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는데요. 볼로냐와 베네치아 등지의 문화센터와 아카데미 등을 통해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학생들이 펜싱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는 프랑스의 귀족들도 물론 포함되어 있었죠. 펜싱의 룰이 정해진 것도 이탈리아에서였습니다. 이렇게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출발한 펜싱인데 왜 지금 우리가 보는 펜싱 경기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은 모두 프랑스어일까요? 그건 바로 현대적인 펜싱의 형태를 구축한 것이 프랑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펜싱을 있게 한 나라, 프랑스

1530년대부터 50년대에 거쳐 검술가들의 장비가 서서히 간소화됨과 동시에 베기, 찌르기, 막기, 반격하기 등의 기술이 체계화되면서 구체적인 펜싱의 경기규칙이 정해졌고, 당시 프랑스의 여왕 카트린 드 메디치 (Catherine de Médici)는 이탈리아의 많은 펜싱 마스터들을 영입하여 프랑스 펜싱의 발전을 도모했습니다. 이어 1567년 샤를 9세가 공식적인 프랑스의 펜싱 아카데미를 인정하고 새로운 규칙을 기반으로 시합이 치뤄지는 것을 허용하면서부터 펜싱은 빠른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샤를 9세와 루이 14세]

이후 루이 14세 시절 패션의 변화에 발맞추어 한 손만을 사용하여 공격과 방어를 모두 할 수 있는 가볍고 작은 검이 생겨났습니다. 이 때 균형을 잡기 위해 왼손과 팔을 사용했고, 이 모습은 바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펜싱의 자세와 굉장히 흡사합니다. 또한 17세기에는 펜싱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는데요. 그 중 가장 혁명적이었던 것은 새로운 형태의 검인 ‘플뢰레’의 등장과 프랑스의 펜싱 마스터였던 라 보에시에르(La Boessiere)가 안전한 승부를 위해 펜싱 마스크를 발명한 것입니다. 이 새로운 검과 펜싱 마스크 덕분에 다양한 기술과 전략이 탄생했음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능하시겠죠?
19세기에 접어들면서 펜싱은 이제 올림픽과 그 역사를 함께하게 됩니다. 1896년 제1 회 아테네 올림픽 때부터 펜싱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1913년 파리에서는 국제펜싱경기연맹이 창설되었죠. 그 후 프랑스는 20세기 초반 내내 플뢰레 부문을 석권하며 펜싱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왔지만 전기심판기의 등장 이후 고전적인 테크닉보다는 스피디하고 다이나믹한 기술 중심의 경기가 펼쳐지면서 서서히 다른 나라들에게 메달을 넘겨주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심지어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는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해 노메달의 굴욕을 당하기도 했지요

경기에 더욱 몰입하려면 꼭 알아야 할 펜싱 용어들

펜싱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알았으니 이제는 경기를 즐기기 위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용어들을 살펴봐야겠죠? 우선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펜싱의 세 종류인 ‘플뢰레, 에페, 사브르’ 입니다.
* 왼쪽부터 순서대로 플뢰레, 에페, 사브르의 유효 공격 범위

[이미지 출처 : 위키 www.wikipedia.org/]

태권도나 레슬링 등에 체급별 경기가 있듯 펜싱도 공격 방식과 유표 공격 부위 그리고 칼의 종류에 따라 세 종류로 나뉩니다. ‘플뢰레’는 칼 끝으로 공격하며 머리와 팔 다리를 제외한 몸통 부분만 공격이 유효합니다. 반면 ‘에페’는 똑같이 칼 끝으로 공격하나 유효 공격 부위가 전신이죠. 공격 부위가 넓은 만큼 수비도 어려운 종류가 바로 에페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에 두 개의 금메달을 안겨준 ‘사브르’는 칼로 베고 찌르는 공격이 가능하며 유효 공격 부위는 머리를 포함한 상체 전부입니다.
경기 시작 전 심판의 ‘앙가르드’ 라는 말은 en garde 즉 ‘준비’를 뜻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알레(allez)’는 우리말로 ‘시작’을 의미하죠. 그리고 선수들의 행동을 중지시켜야 하는 경우에는 ‘알뜨(halte)’ 라고 하며 주심의 질문 등에 선수가 답해야 하는 경우는 ‘위(oui)’ 라고 합니다.

그 밖에 아따끄(공격), 뚜세(유효면 득점), 농 발라블(무효면), 마르쉬(앞으로 가기), 롱쁘르(뒤로 가기) 등도 알아두면 펜싱 경기를 한층 더 즐길 수 있게 해 줄 주요 용어들이랍니다.

[이미지 출처 : 런던올림픽 공식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London2012]

귀족들이 즐기던 유럽의 스포츠라는 인식 때문인지 아니면 프랑스어로 이루어진 어려운 경기 용어 때문인지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 꾸준히 우리나라 선수들의 활약이 있어왔음에도 펜싱은 비인기 종목 중 하나였죠. 하지만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금 2 • 은 1 • 동 3이라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내면서 펜싱은 단번에 효자 종목으로 떠올랐고, 펜싱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급증했습니다. 한 때 유럽 국가들의 전유물이었던 펜싱은 이제 더 이상 몇몇 국가만의 잔치가 아니게 되었죠.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보여준 뛰어난 기량과 성적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 매력적인 신사의 스포츠가 깊게 뿌리 내리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