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의 프랑스는 예술사적으로 무척 중요한 시기라고 할 만큼 예술의 황금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풍요로운 예술적 시도를 맞이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는 말일텐데요. 이렇게 다양하고 화려한 예술이 만연하던 파리에서 실험적이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화가, 아니 예술가가 존재했습니다. 루이까또즈와 함께 만나볼 프랑스의 역사적 예술가는 바로 에드가 드가 입니다.

무희의 화가, 에드가 드가


현세에서 대중들은 에드가 드가를 흔히 '데생의 천재'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그는 그림속에 섬세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세밀하게 표현해냈기 때문인데요. 드가의 작품들에 주로 등장했던 주인공은 발레리나로, 당시 발레리나 그림은 화가에게 경제적으로 큰 수입을 안겨주는 그림이었습니다. 부르주아 집안에서 부유하게 자라온 드가는 꼭 발레리나가 아니더라도, 상류층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레저 장르를 그림의 소재로 택했다고 하는데요. 그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극적인 상황들은 여러 가지로 모험적 예술 성향을 보이던 드가에게는 좋은 소스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한 점은 드가의 성향에 있습니다. 그는 평소 어린이나 강아지, 꽃과 같은 식물은 물론 심지어 인간, 그 중에서도 여성을 혐오하는 미장트로프(Misan thrope)로 악명이 높았던 까닭인데요. 그렇게도 여성을 혐오하면서도, 무희의 화가라고 불릴 만큼 발레니나의 몸짓을 섬세하고 역동적으로 표현하게 된 것에는 무엇이 계기가 되었을지는 의문으로 자리 잡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춤을 추거나 공연을 준비 중인 발레리나와 그녀를 지켜보는 어두운 그림자의 모습을 가진 부르주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당시 발레리나는 가난한 노동자 집안의 소녀들이 택하는 신분상승의 통로였는데요. 그 욕심과 또 상품화된 육체를 탐닉하는 타락한 부르주아의 모습이 드가의 작품 속에는 굉장히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퇴폐적으로 변질된 프랑스 예술계를 꼬집어 낸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다른 편에서는 드가 자신 역시 그러한 상품화된 육체를 구경하고 즐기는 부르주아 중의 한 명일 뿐이라는 평 역시 공존을 하는데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갔던 그였기에 그러한 구설수가 생긴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사진, 그 찰나를 찾아내다


19세기 인상주의 화가 중에서도 에드가 드가가 가장 부각되는 이유는 예술적 도구로 사용되지 않았던 다양한 기법을 시도했다는 점 때문일 것입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카메라와 사진입니다. 드가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특징처럼 다양하고 화려한 색채를 이용해서 빛에 의한 발색을 면밀하게 표현해내면서도, 동시에 카메라를 이용해서 발견한 다양한 구도와 동적인 느낌을 포착해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예술세계를 보여줍니다. 19세기 프랑스 파리가 예술사의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카메라를 예술 기법으로 활용하는 것은 극히 드물었고, 그만큼 드가의 시도는 가히 혁신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획득한 성과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섬세하면서도 역동적인 몸짓, 짧은 찰나를 통한 표현의 확장, 그리고 사진 속 빛에 의해 연출되는 흑백의 대비를 통해 또 다른 느낌을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사진을 통해 전달된 느낌을 그림으로 승화시키기도 했는데요. 사진을 통해서 동적이면서도 극적인 느낌을 관찰해내고 포착하여 그림으로서 승화시키는 등의 작업은 드가의 작품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드가는 편중됨 없이 다양하고 확장된 시야의 예술관과는 다르게, 세계 대전 당시 반 유태주의 노선을 택하며 유태인이었던 동료에게 등을 돌리는 등 냉정하고 차가운 모습의 양면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예술에는 누구보다도 관대했지만 그 외에 것에는 완강하고 단호하게 구분을 지어 마치 이중인격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1917년 83세의 나이로 숨진 이후 현재까지 그의 작품은 높은 명성을 자랑하면서 동시에 작품 속에서 묻어나는 성실함과 천재성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데요. 예술에 있어서 만큼은 진정성 있는 접근과 다양한 실험적 모험을 보여주었고 예술계가 성장하는 계기와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이 오늘날 드가의 명성을 존재케 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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