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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예술가/루이까또즈] 근대 상업미술의 흐름을 제시한 예술가, 쥘 셰레 vs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순수한 예술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미술이 근대적인 상업화의 과정을 겪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사람들의 이목과 관심을 끌기 위한 상업적인 성격을 띠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상업적인 성격의 미술은 어느새 미술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하면서 점차 개성과 특징을 살리게 되는데요. 그러한 개성을 지니게 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프랑스 상업미술의 두 예술가를 만나보려고 합니다. 포스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쥘 셰레와 시대의 화가라고 불리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입니다.


쥘 셰레, 포스터의 아버지



포스터라는 분야를 최초로 개척한 선구자인 쥘 셰레. 근대 문명이 일어나던 18세기 쥘 셰레는 석판화 인쇄술을 이용하여 홍보용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프랑스에서 활동 중이었습니다. 피카소나 고흐와 같은 순수예술의 거장으로 칭해지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현대 우리가 만나는 거리 선전물인 포스터의 모든 시작과 기원은 쥘 셰레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대에 있어 보다 더 화려하고 역동적인 비주얼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마케팅이 활용되고 있는데요. 마케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 요소인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가장 먼저 캐치하고 활용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의 미술 영역은 무척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쥘 셰레의 포스터는 파리 거리에 붙이기만 하면 아름다운 비주얼에 누군가에 의해 떼어지기 일쑤였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소비자들과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고 눈길을 끄는 것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말을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포스터에서 홍보하는 내용과 상업적 측면이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관심을 끌 수 있었을지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해석이 뒷받침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포스터를 그릴 때에도 사람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는 원색적인 컬러를 이용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는데요. 표현하고자 하는 장면을 역동적인 드로잉으로 표현한 후 다색 석판 기법을 이용하여 포스터를 찍어낸 점은 색을 잃은 도시에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다색석판인쇄술이 아직 개발되기 전 빨강, 노랑, 파란색을 이용하여 석판으로 인쇄를 해낸 그는 인쇄술에 있어서도 큰 획을 긋게 됩니다. 오직 광고를 위한, 홍보를 위한 컨셉으로 포스터를 제작하고 그것을 통해서 오늘날의 비주얼 아트와 일러스트에 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그는 포스터의 아버지라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큰 흐름과 맥락을 제시합니다.

앙리 드 툴루즈, 시대를 그린 화가



쥘 셰레가 광고와 화보, 비주얼을 중점으로 하는 포스터를 창시해내면서 상업 미술의 큰 흐름과 맥락을 제시했다면,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은 큰 흐름과 맥락을 통해서 좀 더 세밀하고 시대적 풍경과 포인트를 살린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물론 앙리 드 툴루즈 역시 쥘 셰레가 처음 시도한 컬러 판화기법과 쥘 셰레의 그림 스타일이 답습된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더해 도발적인 실루엣과 배색으로 표현해 대담한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기도 했기 때문에 특별한 면을 지닙니다. 쥘 셰레가 거시적이고 조금 확장된 느낌의 포스터를 완성하여 후대에서도 다양한 비주얼 아트에 창시적인 부분을 지닌다면 앙리 드 툴루즈는 미시적이지만 확실한 캐릭터와 개성으로 그래픽 아트에 있어서 영향력을 미칩니다.


앙리 드 툴루즈의 그림은 주로 몽마르트를 대표하는 캬바레 물랑루즈가 배경을 이룹니다. 볼륨이 풍성한 스커트를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캉캉춤을 처음으로 시작한 곳이기도 한 물랑루즈는 앙리 드 툴루즈를 자신들의 전속 포스터 화가로 두고 있었는데요. 이러한 역동적인 움직임을 가진 댄서들의 움직임과 그들의 여성스러운 실루엣을 현란하고 세밀하게 묘사해 사교계와 파리의 밤 문화를 화려하게 포장해내는데 일조합니다.

쥘 셰레의 화풍을 좇지만, 그와 다른 점이 있다면 부드러운 느낌의 수채화를 이용한다는 점 일 텐데요. 그럼에도 그의 그림 속에는 화려한 옷을 입고 춤추는 무희와 어둠 속에 가려진 프랑스의 어두운 사교계가 등장시키며 보이는 모습뿐만이 아닌 그들의 내면과 삶 등을 포착해 그려내곤 했습니다. 앙리 드 툴루즈의 그림들을 보면 사교계를 주름잡으며 화려한 인생을 살았을 것 같지만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을 뿐 하반신 장애로 언제나 낮은 곳에 앉아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을 관찰하며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곤 했습니다. 과도한 음주로 37세라는 짧은 나이로 숨을 거둬야 했던 그는 쥘 셰레와는 또 다른 영역을 구축하면서 새로운 비주얼 아트의 흐름을 제시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마음을 얻어내는 것은 예술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상업미술에서는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에 더하여 그들에게 호기심과 소비를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또 다른 과제가 있는데요. 그러한 점에서 그들은 단순히 독특한 그림과 판화 기법만으로 거장이라 이름 하게 된 것이 아닌 사람의 심리와 소비자들의 욕구를 가장 확실히 그리고 빠르게 캐치해 예술로 승화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더욱 큰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